한국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할 때 혹시라도 환경과 관련된 단체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때문에 내가 정착하게 될 멜번에 있는 환경단체들을 알아보던 중 CERES라는 단체를 찾게 되었다. 구글 지도를 통해보면 도시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연적인 환경 속에서 꽤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홈페이지에서는 지역 사회 그리고 주민들과 교류가 탄탄해 보여 어떠한 형태로 운영이 되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 초기, 멜번의 환경단체에서 일을 구해보겠다는 계획이 상상만으로 마무리되면서 정착에 정신을 쏟느라 방문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잊고 말았다. 그러던 중 생태지평에 호주 환경 이야기를 싣게 되면서 날을 잡아 CERES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진#1,2 : CERES 방문자센터)
#1 시민 친화적 공간
날씨가 좋은 어느 휴일 가방을 둘러메고 CERES로 향했다. CERES는 ‘Centre for Education and Research in Environmental Strategies’의 약자로 해석하자면 ‘친환경 전략 연구 및 교육 센터’ 정도가 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든 관광지와는 달리 환경 단체를 방문하는 것이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다지 흥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주변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공간을 마주하게 되자 누군가와 같이 왔더라도 손색이 없을만한 휴식 공간이었다.
(사진#3 : 공원으로 조성된 CERES Community Environment Park)
공원처럼 조성된 공간에서 누구나 방문하여 편하게 쉬며 머물다 갈 수 있으며, 친환경 유기농 식단의 레스토랑과 카페, 지역주민과 함께 가꾸는 텃밭들 사이로 군데군데 흩어진 그늘이며 의자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특히 유치원 미만의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상당히 많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이곳에서 무상으로 시민들에게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이나, 친환경 관련 워크샵 혹은 유기농 식단 요리 교실, 명상 클래스, 도시 농업 학교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기에 많은 이들이 오간다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와 같았다. 하지만 환경단체에 공원처럼 자유롭게 방문해서 휴식을 취하다 가는 것 자체가 방문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알고 보니 전체 부지는 CERES community Environment Park 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4 : CERES 내부에는 위치한 유기농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2 지속가능의 기능적 공간
개인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변화는 다방면적으로 시도되어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강력하고, 극단적인 방법일수록 효과가 가시적일 수 있으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실행하여 유지하기에는 심리적 그리고 현실적인 문턱이 너무 높다. 때문에 대중들에게 설득력만이 아닌 실용성이나 실행력까지 어필할 수 있는 다방면적인 시도가 늘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CERES의 공원 안에서는 유기농 식자재나 친환경 세제, 샴푸 등 생활용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유기농 곡식이나 조미료들은 따로 포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을 가져와서 필요한 만큼 덜어서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나에게 인터넷에서만 보던 시스템이 실제로 운영되는 것을 본 첫 경험이었다.
(사진#5, 6 : 유기농 친환경 식품 및 제품 상설 매장 전경)
매주 토요일에는 ‘Makers & Flea Market’ 이라는 벼룩 시장이 열린다. 친환경 제품 제작자와 사람들이 직접 만나 거래를 하게 되면 유통에서 오는 가격 인상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기에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이득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이득도 발생한다. 이 장터에서는 친환경 제품, 중고 제품,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등장한다. 오염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환경과 사람에게 덜 해로운 방식을 다방면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친환경 주거에 대한 접근도 흥미로웠다. 도시 농업과 에코 하우스에 대해 소개하고, 시민들이 시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면서 실천의 문턱을 낮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텃밭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도시 농업 학교로서의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도시 농업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자재들 그리고 묘목과 씨앗도 판매하고 있다. 에코 하우스는 집에서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저에너지 주택을 제안한다. 에코 하우스라는 모델 하우스를 가지고 태양열 발전만이 아니라 단열, 난방, 냉각, 온수, 조명에 관련된 내용으로 재생에너지를 쓰면서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각자 주택과 지역마다의 특성으로 모든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기에 CERES에서 유료로 가정 점검을 나가 어떤 방식이 적용 가능한지 확인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3 교육 공간
앞 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곳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학교 견학 및 소풍, 교사용 환경 연수, 성인 워크샵, 환경 교육과 유기농 요리, 친환경 원예와 같은 직업 교육 및 장애 청소년이 CERES 활동에 참여하는 큰 범주를 가지고 있다. 내가 방문한 날도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청소년들 5개 반 정도가 강의, 관찰, 토론, 춤, 교육 놀이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사설 유치원의 소풍도 있었다. 아이들의 참여와 적극성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으나 관계자가 촬영을 허락하지 않아 아쉽게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사진#7, 8 : 실내 및 야외 교육공간이 여럿 있다.)
환경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라 하면 직접적인 환경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는 단계의 교육을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CERES에서 개설되는 성인 워크샵은 그 폭이 상당히 넓다. 환경 강의와 지속가능한 원예 디자인부터 도시 농업의 실무, 친환경 주방 운영에 대한 정부 공인 자격증 같은 지식과 실무의 영역도 있지만, 일상생활의 영역과 관련된 영역도 많다. 소비를 줄이는 것에는 오래쓰고, 아껴쓰는 것도 포함이 되기에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동차 정비 수업도 있고,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사용한 요리 교실도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된 클래스의 숫자만 해도 69가지가 되기에 이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수업들만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사진#9, 10 : 도시 농업에 필요한 씨앗과 자재들을 판매한다.)
#4 마무리
그런데 이렇게 규모가 크고, 활동 범위가 넓은 비영리 환경 단체가 1982년에 설립된 것이라고 하는데 27년 동안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니 CERES는 지역의 사회적 단체들과의 연계 외에도 국가 기관과 관련되어 꽤나 굵직한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멜번 옆에 붙어있는 도시인 모어랜드 시 의회로부터 주로 지원을 받고, 빅토리아 주 정부 및 교육부, 빅토리아 주 지방 정부, 빅토리아 주 지속가능성국과도 파트너십 혹은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연간 40만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제대로 자리 잡은 단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을 지닌 지역 주민들과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러한 단체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가 보기 좋았다.물론 한국의 사회적, 지리적, 정책적, 문화적 상황이 다르니 똑같은 것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심리적 장벽 없이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방식의 고민과 시도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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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는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바라본 일상에서의 환경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재욱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생태지평연구소 전 연구원이자 전 프리랜서 기타 강사.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3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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