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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두근두근 후기 / 시골빵집 그 세번째 시간

월, 2014/09/22- 15:28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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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3번째 시간


시간: 2014년 9월 13일 오후 6시 

장소: 서촌 커피한잔

참석: 이관택, 이종건, 이종화, 고나현, 최건희, 이중호, 이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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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만드는 그리스도인 / 이중호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친구인 이하늬 친구가 있어서 더 풍성했고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관택형의 발제지를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혁명은 발견이며 우리는 땅을 만드는(혁명의 기반을 다지는) 사람이 되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진리를 통해서, 어떤 순간을 통해서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지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탈은폐되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 발견이 우리에게는 나 자신을 알게 하고 내가 만들어낸 세상을 알게 합니다. 그 앎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전까지는 혁명은 거창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관택이 형의 글을 보며 혁명은 우리의 일상에서의 발견이 도화선을 만들고 폭발력을 만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균들이 균들을 배양하듯이..  소중한 평범한 일상의 가치도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또 형의 발제를 보며 어떤 땅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그러한 땅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건희가 기적의 사과를 말했는데 9년 동안의 실패가 땅을 건강하게 만들었고 결국 사과 자연재배를 성공했다는그 말이 저에겐 이렇게 들렸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 없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 아닌가. 모두가 실패한다고 전제를 두었을 때(패배감을 경험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공한다는 것에 전제를 두고 시작하자 어떤 상황이라도. 왜냐하면 진정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라면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현이의 발제는 제가 '의도적인 격리' 라고만 써놔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아 그 나현이의 불을 뿝는 연설의 감정만 기억에 남습니다. 나현이는 좋은 후배이기에 선배를 용서해주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절대 여성 차별 뭐 그런건 아닙니다.
 종건이의 발제문에 대한 기억은 어느 순간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혁명만 남고 불편한 혁명은 사라졌다는 것, 운동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개인적인 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과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는 혁명을 꿈꾸는 혁명가들의 자기기만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그 의문들은 많은 질문을 주었습니다. 아! 그리고 매력적인 로자 룩셈부르크도 소개해주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를 꿈꾸었던 그녀를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나현이와 함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고난함께 사무실에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나현이를 배웅하고 집에가려고 하는 그 때 역 근처에서 잡동사니를 파는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 아저씨가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짐을 싸고 부탁하신 곳까지 데려다 드렸습니다. 참 기분 좋았지만 씁쓸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한 일들 중에서 가장 가치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장애인을 도울 때는 칭찬 받지만 장애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순간 칭찬이 아닌 비난을 받는 사회를 살기 때문입니다. 종건이의 글을 기억하며 또 많은 생각이 밀려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2000년 전 그 당시 사람들이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한 장애인, 피부병 환자들도, 제도적 구조적으로 몸을 팔아야먄 살 수 있는 여성들도 매국노라 지탄받는 세리도 살 수 있는 땅. 그런 땅을 만들기 위해 오신 하나님.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 죽음의 규칙을 거부하시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봅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 오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 기독교가 어느순간 사람을 죽이고 공감능력을 상실한 모습과 함께 하나님이 거부하신 죽음의 규칙을 따르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믿음으로 사람 살 만한 땅을 이루기 위해 땅이 되려고 하는 형 동생 동지들을 만나 참 기쁩니다. 
아 그리고 우리 남자 거늬, W에이스 종화 화이팅. 
내일 우리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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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이하늬



 첫 모임인데 지각에 감기까지 겹쳐 여러모로 정신없는 모습만 보여 염려스럽습니다. 중호형(이라도 불러도 되겠죠?)께서 걱정하시는 바와는 달리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모임 중간에 '이 모임이 어떤 성격인지 대충 알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취소해야할 것 같네요. 모임에 참가하신 분들을 대상화하고 편견아래 섣불리 판단했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웠습니다.

 "너도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있지 않느냐" 종건학우께서 종화학우에게 한 말씀인데, 집에 가는 길에 제 마음을 콕콕 찔렀습니다. 전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꿈꿨지만 저도 모르게 여러분께 덧씌워진 명패만 보고 여러분을 판단했네요. 죄송합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재미있고, 또 아주 유익한 만남이었습니다. 비록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발제 가운데 귀한 인사이트들을 받아 기쁩니다. 그 중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관택선배께서 혁명은 발견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일상에 민감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가운데 주어진 혁명의 실마리들을 성령의 속삭임으로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부터 하루 뒤가 기다려집니다. 차마 다른 공동체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맘껏, 신나게 할 수있을 것 같아 기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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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13() 두근두근 책모임 글: 두더지

 

.: (어떤)순간의 혁명을 기대하며

 


혁명은? 하나. 인생길의 모든 풍경에서 두 눈을 똑바로 뜨는 일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서 친환경 빵집을 운영하는 이타루씨. 그는 빵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장인정신를 소개하면서 빵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작디작은 의 세계에서부터, 빵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현재의 시장체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성찰하고 실천하는 혁명’(?)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 이 땅의 문제를 만나고(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길이 얼마나 다양하고, 방대할 수 있는지. 삶을 바꾸는 혁명은 결국에 시선의 깊이와 삶의 성찰로 가능하며,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지극히 종교적이고, 실제적인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책의 놀라운 지점은 한사람의 경험담 안에 자리한 통전적인 성찰에 있다. 이타루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과 자녀들의 삶을 연결시키고 있으며, 한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분절되지 않음을, 현실과 꿈의 만남과 실현을, 도시문명과 농의 세계를, 균의 존재와 상품생산의 과정을,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 대안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스템 너머의 눈을 가지고 모든 존재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 그것이 바로 이타루가 경험한 혁명이다. 어찌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길에서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살피는 것. ‘사물상품으로, ‘그냥 존재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피며, 때론 놀라고, 때론 신비로워하며, 때론 슬퍼하고, 때론 분개하며, 때론 바꾸고자 하여 득달같이 달려들어 두 눈을 똑바로 뜨는 일이 바로 우리의 이어야 하지 않는가.


 

혁명은? . 적의 실체를 잊지 않기


나는 이 책의 제목에 왜 굳이 자본론이라는 표현이 있을까 궁금했다. 솔직히 책의 내용과 분량상 자본주의자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라기보다는 현대 문명사적인 비판의 관점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책의 전체적인 기조는 자칫 또다시 장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소수 엘리트주의그리고 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을 통한 전통사회로의 회귀론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지난 번 모임에서도 함께 나누었듯 이미 현대 산업사회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집중된 중세 봉건사회의 권력을 민주주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거쳐 탄생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회귀는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이 책에서 자본론을 제목에 붙인 것, 그리고 맑스의 이름을 꾸준히 회자시키고 있는 것은 적의 실체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함이 아닐까. 모든 것을 돈으로 치환시키며, 모든 존재를 무시하는 작금의 사회가 탄생된 원인과 그 책임을 맑스는 자본론을 통해 정확히 밝히고 있다. 삶의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지만 결국 그 분절된 삶 속에서 우리는 이 시스템의 궁극적인 적의 실체를 잊고 살지는 않는지. 이타루씨는 자신의 소소한 성찰과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의 전제가 현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이며, 그로인해 위태로운 모든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평온에 안주하지 않고 적 실체를 잊지 않으며.


 

혁명은? . 균이 배양될 수 있는 토양 가꾸기


자연재배’. 결국 농사는 곡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게도와주는 것이며, 그렇게 스스로 자란 곡물과 천연균의 만남이 가져오는 상상치 못할 자연스러운 결과가 바로 혁명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너무 낭만적인 소리다. 중요한 것은 균을 배양하지 못하게 만드는 토양에 있다. 균은 토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성되기 마련인데, 작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선한 균(선한 균은 발효를 이끌어낸다. 발효는 아주 자연스러우며 조용한 혁명이겠지)이 과연 배양될 수 있을까? 작금의 교회에서 발효를 일으킬 수 있는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능한가? 작금의 교육시스템에서 윤리적이고, 헌신적인 선한 인간이 가능한가? 작금의 정치풍토에서 훌륭한 정치인이 가능한가? 토양을 바꾸는 일이 좋은 빵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시급하듯이, 결국 이 땅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자연스러운 발효를 위해서는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토양을 바꾸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 지점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해 볼일이다. 정치의 토양을 바꾸기 위해, 교회의 토양을 바꾸기 위해? 아니 토양은 무엇을 뜻하고 균은 누구를 뜻할까? 함께 논의 해 볼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는 전복적인 발견’. 결국 발효는 발견되는 것이며, 혁명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지만 굉장히 이질적이며, 상당히 불편스럽지만 익숙해지면, 나무나 향기로운 아주 자연스러운 신의 질서. 이것이 바로 발효이자 혁명이겠지. 하나님은 분명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존재들을 통하여 이 작업을 해나가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니 태초 이후로 단 한번도 끊이지 않고. 발효와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발제물 ->  시골빵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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