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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 여섯번째 이야기 - 무엇이 쓰레기가 되나

월, 2019/12/16- 23:37admin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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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도착한 호주에서 어느새 12월을 맞이했다. 최근에 렌트했던 집을 떠나게 되면서 집을 비워주게 되었다. 호주에서는 전 집주인의 계약과 세간을 모두 넘겨받으면서 권리금을 지불하는 방식의 Take-Over 거래가 활발한 편인데, 이 방법으로 나는 고등학교 친구였던 전 집주인이 3년 정도 살던 집과 세간을 모두 받아 11개월 정도를 지냈다. 이런 집을 정리하다보니 지내면서도 이런 물건들이 집안에 있었나 싶었던 것들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01_살던 곳.jpg






<사진01_2019425일 거주 4개월 차의 집 내부>



 



사진02_마지막밤.jpg






<사진02_20191128일 새벽 집을 나가기 전 마지막 밤의 집 내부>



 





제법 멀쩡한 가구와 가전은 인터넷을 통해 중고로 판매를 하고, 마지막까지 판매가 되지 않은 물품들은 집 근처 OP shop에 기부를 했다. OP shopOpportunity shop 의 줄임말로 중고 물품을 기부 받아 다시 재판매하는 가게들을 부르는 말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이름 그대로 기회(Opportunity)를 잡을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곳에 전자렌지, 이불, 식기류 등 많은 것을 기부해서 버리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OP shop에서 2$를 주고 샀던 슬링백을 다시 같은 곳에 기부를 하니 기분이 묘했다. OP shop들은 의류, 캐리어, 식기류, CD, 가방, 신발, 장식품 등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다루는데 멜번의 거주구역에서는 정말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현재 이사를 한 지역에는 OP shop 밀집 지역으로 도보 20분 거리에 4개나 자리를 잡고 있다. 정리해야 하는 물건들 중에도 판매와 기부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경질 쓰레기 수거를 신청해서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안내 책자에 따르면 경질 쓰레기로 수거된 것들도 바로 폐기 혹은 재활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중고사용이 가능한 것들은 한 번 걸러져 지역관할의 OP shop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집 근처 OP shop의 규모가 작아 기부 받을 수 없지만 사용할 수 있는 책상 등 의 가구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진03_경질폐기물수거신청.jpg






<사진03_경질 폐기물 배출 신고서>




 





나름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한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쓰레기로 배출해야 하는 물건들의 양은 상당히 많았다. 특히 일부분이 고장 나거나 기능하지 않지만 그냥 가지고 있는 김에 사용하던 가전이나 가구들은 근방의 친구들도 가져가기를 꺼려했고, 기부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쓰레기로 배출해야 하는 것과 기부가 가능한 것들을 분류하다가 문득 손에 든 물건을 들고 생각했다. ‘아직 분류되지 않은 이 물건은 쓰레기일까? 아닐까? 무엇이 쓰레기가 되는 것일까?’ 분명 오늘까지 망가진 신발장은 망가졌음에도 이전 집주인이 사용한 시간을 포함하면 3년 정도를 신발장으로 기능하는 집안의 가구였다. 하지만 몸만 이사를 가야하는 나로서는 가져갈 수 없었으며, 부러진 형태로 망가졌기에 기부가 불가능했고, 결국 쓰레기로 버려졌다. 신발장은 그대로인데 나의 상황과 결정으로 그 것은 쓰레기가 되었다. 이처럼 자체의 상태는 변하지 않았음에도 사람의 판단만으로 쓰레기가 되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은 식탁의 남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식을 하는 경우 우리가 식사를 끝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쓰레기가 된다. 아직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단지 판단에 의해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 줄이기와 친환경 제품 사용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일이 소비를 늦추고, 축소하는 것이다. 이 순서가 뒤바뀌었을 때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바구니를 대체하기 위한 에코백과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한 텀블러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예쁜 에코백과 텀블러가 패션의 일부로 자리 잡으면서 수집과 교체 주기가 짧아지면 실제로는 더 많은 양을 자원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덴마크의 환경 및 식품부도 최근 유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면 재질의 에코백이 비닐봉지(저밀도 폴리에틸렌·LDPE)가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고려할 경우 7100번 재사용돼야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은 2만번 재사용돼야한다.



이에 따라 덴마크 환경 및 식품부는 슈퍼마켓에서 가져온 비닐봉지를 최대한 많이 재사용 한 다음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재활용하는 편이 에코백을 구매하는 것 보다 낫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이번 연구는 지구 온난화 관련 연구일뿐, 해양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는 비닐봉지가 가장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환경 지키려 샀는데... 텀블러·에코백의 배신’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6.16






1998
IMF 구제금융 요청이 있었던 다음해 한국에서 아나바다 운동이 일어났었다. 이 운동은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라는 내용의 골자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소비의 축소를 이야기 했다면 이제는 인간과 지구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소비의 축소로서 이러한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비를 축소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넘어서기 가장 큰 어려움은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은 심리적으로 소비를 자극한다. 유행에 어느 정도 맞춰가야 한다는 사회 전반적인 힘이 자리하고 있어, 단지 개인 심리만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최근 한국에서는 구제 빈티지 패션이 유행이라고 한다. 홍대 앞에만 해도 여러 개의 빈티지샵이 생겼다고. 물론 구제 아이템이 주목받았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미래인 2020년을 앞둔 지금 다시쓰는구제와 한발 빠른 소비의 유행이 만나 이루어지는 시장에는 환경이 자리할 공간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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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는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바라본 일상에서의 환경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재욱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생태지평연구소 전 연구원이자 전 프리랜서 기타 강사.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3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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