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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삶] 두번째 이야기 - 사계절을 사는 섬(부제: 섬에서 농사 짓기)

화, 2019/10/22- 22:35admin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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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도를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로 알고 있지만, 관광지만큼 특징적인 섬의 모습은 바로 사계절 내내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농업지역이라는 점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밭담을 경계로 이어져있는 수많은 밭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제주도에 와서 살기 전까지 제주도에 이렇게 많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지 몰랐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귤, 한라봉, 천혜향 등을 키우는 과수원이 대부분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쉴 새 없이 다양한 작물들이 제주도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제주도 농업지역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2018년 경지면적은 59,338ha(17ha, 59,321ha)이다(출처: 국가통계포털). 그리고 농업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제주도 주민등록 인구 696,478(20199월 기준) 중에서 2018년 농가인구가 82,751, 어가인구가 9,081명으로 어업보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출처: 제주도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연구실에서 나온 제주농업 현황과 정책보완과제(2019.2.18)’를 살펴보면 농산물 생산 감소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농업부문 부가가치액이 제주의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7%에 달한다. 이는 전국의 농업부문 부가가치액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2.2%)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취업자 수도 제주지역에서 농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4.7%로 여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전국기준 4.9%), 농림어업부문이 여전히 제주경제에서 주요한 기반산업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특히, 제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류와 과실류는 우리나라 전체 산출량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채소 생산량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7%이고, 그중에서도 양배추 생산량 32.9%, 당근 생산량 45.9%, 무 생산량 25.6%, 감귤 생산량 99.8% 이다.

 

섬에서 농사 짓기(여름-가을)


키위밭_사진이승은.jpg 

그림 1 비닐하우스 키위 밭에 달린 키위들


제주도 밭에는 다양한 작물들이 시시때때로 자란다. 제주도에는 논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밭인데, 밭에서도 한 작물을 오래 키우는 일은 거의 드물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작물들이 무, 당근, 양배추, 수박, 토마토, 브로콜리, 케일, 취나물, 양파, 마늘, 대파, 단호박 등으로 정말 다양하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농사를 짓는 분들과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여 일도 함께 하고, 귀농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일을 배우기도 하는 등 교류가 활발하다. 나도 덕분에 몇 가지 농사일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여름부터 가을에 만난 작물은 옥수수와 키위이다.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제주도에서 처음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초당옥수수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초당옥수수 수확 일을 나간 것은 6월 말이었다. 초당옥수수는 다른 옥수수에 비해 당도도 높고, 무엇보다 과일처럼 생으로 먹을 수 있어서 이 시기에 인기가 아주 많다. 단순한 수확작업이지만 날이 습하고 더워서 무척 힘이 들었다. 그래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옥수수 맛이 너무 좋아 여기저기 자랑하는 즐거움이 더욱 컸다.

키위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란다. 10월경 키위를 수확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키위는 열매가 모두 성인 키 정도의 위치에 고르게 달리기 때문에 손만 조금 뻗어서 돌려 따면 되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키위를 딸 때 이미 익어버려 속이 약간이라도 물렁한 열매는 따로 모아주어야 한다. 키위가 익으면서 나오는 가스로 인해 다른 단단한 키위들마저도 팔리기 전에 물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위를 따면서 계속 손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물렁한지 괜찮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만약 물렁한 키위를 만난 경우 그 자리에서 잘 익은 키위를 맛볼 수 있는 매우 행복한 기회도 한번쯤 생기기 때문에 보물상자를 찾는 기분도 든다.

 

섬에서 농사짓기(겨울-)


노지감귤_사진이승은.jpg

그림 2 제주도 겨울을 따듯하게 해주는 노지감귤

내가 제주도에 와서 처음 밭일을 해 본 것은 노지감귤로 입도 첫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2월이었다. 제주도에서는 귤 수확이 제일 쉬운 일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어 큰 부담 없이 나갈 수 있었다. 날도 시원하고 2m 남짓한 높이의 귤나무에서 잘 익은 귤 꼭지를 가위로 잘라 수확하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다. 그해 겨울에는 귤 수확 일이 종종 있었다. 귤을 수확할 때 중요한 것은 꼭지를 바짝 잘라주어 다른 귤에 상처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노랗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귤을 보면 이곳이 제주도구나 느끼게 된다. 제주도의 겨울은 귤이 있어서 춥지 않다.

노지감귤을 수확하고 나면 비닐하우스 안에서 당분을 최대로 끌어올린 천혜향을 만날 수 있다. 천혜향은 껍질이 얇고 향기가 좋고 당도와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인기가 많다. 천혜향 비닐하우스에 가보면 천혜향 열매 하나하나를 끈으로 묶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천혜향은 귤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수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가 노란 천혜향 껍질을 까서 달달한 알맹이를 먹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필요했을까.

 

섬의 기후에 맞게 살아가기

개인에 따라서 제주도에 이주해서 살아가는데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 제주도의 바람이 싫다면 아마 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는 여자, 돌과 함께 바람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바닷가이고 섬이니까 의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쉼 없이 거침없이 부는 바람은 때로 사람을 지치게도 하고, 작물들이 생육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만나게 되는 밭담은 검은 현무암으로 대충 울퉁불퉁 쌓아 올린 것 같지만, 바람이 많은 제주도 기후에서 작물이 잘 자라도록 적응한 조상들의 지혜이다. 제주도 밭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FAO(UN식량농업기구)에서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으로도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제주도의 밭담이 농업유산으로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척박한 제주도 환경에서 수분 조절, 바람 차단, 가축 침입방지, 생태계 연결 등의 기능을 하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농업문화를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제주 밭담 농업 유산 관련 소개 사이트) 비록 지금은 비닐하우스도 많이 생기고, 농지 대신 주택이나 상가 등 건물을 세우는 곳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제주도에는 지켜야 하고 지키고 싶은 소중한 농업이 이어져나가고 있다.

 

사계절의 시간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계절을 기다린다는 것이 도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항상 시간을 이끌어가는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섬에 오니 계절은 나의 의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고 기다리고 살아가다보면 항상 언제나 돌아오는 것이었다. 바다에 나간 고깃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제철에 맞는 먹을거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계절 따라 흐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제주에서 1년을 살면서 느끼게 된 사계절의 시간표였다.

올 겨울 맛있는 귤을 까먹다보면 내년 여름 밭에서 무럭무럭 커가는 수박을 먹을 수 있겠지.’



 

::다음 이야기:: 섬의 어머니바다 속으로


:덧붙이며: 제주도 농업, 식재료 관련 책 추천

(1) 제주 돌담, 2015, 김유정 지음

(2) (바람이 쌓은) 제주돌담, 2015, 강정효 지음

(3) 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 농사의 기술, 2018, 김영표 지음

(4) 별미제주: 제주시장 노닐기, 2017, 박현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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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삶>은 필자가 제주에 내려와서 살고 정착하기까지 2년 동안 지내면서 겪은 제주의 환경, 생태, 생활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승은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제주도민

생태지평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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