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헌용·박종순 생산자 부부는 경남 남해군 창선면에서 20년 넘게 고사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부부를 포함한 고사리 생산자 네 가족은 고성 공룡나라공동체에서 활동하다 2017년 4월 남해 보물섬공동체로 분화해 나왔습니다.
경남 남해 보물섬공동체 장헌용 박종순 생산자
산은 온통 붉었다. 찾은 때가 5월이니 단풍의 다홍빛일 리 없었다. 이즈음의 산이라면 응당 걸치는 신록의 옷깃을 채 여미지 못한 듯, 고동색 섞인 검붉은빛 속살이었다. ‘산사태라도 났던 것일까’ 생각하던 차, 앞장서 가던 장헌용 생산자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 왔습니다. 여기가 고사리밭이에요.”
밭에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두둑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땅이겠거니 지레짐작한 자신을 탓하며 황급히 다가섰다. 그냥 붉은 흙바닥이라 생각했던 곳 드문드문, 가느다란 초록빛이 꼬무락대며 솟아 있었다. 6,000평 넓이의 고사리 천지였다.
“굳이 산등성이에 고사리밭을 만든 이유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부부는 고사리 농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장헌용·박종순 생산자가 고사리를 키우기 시작한 지는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 온화한 기온과 적당한 해풍 덕에 우리나라 고사리의 30%를 공급하는 남해군 창선면이지만 당시만 해도 고사리 농사를 짓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원래 감 농사를 지으려 했던 곳인데 땅의 성향이 맞지 않았는지 감나무가 자라지 않았다고 해요. 대신 생각지도 않았던 고사리가 번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끊어다 팔기 시작한 것이 창선 고사리의 시작이에요. 저희도 제법 초기부터 합류했죠.”
흥미진진했던 이야기에서 가장 솔깃했던 것은 고사리가 스스로 번져나갔다는 부분이었다. 보통의 농사가 종자든 모종이든 사람이 땅에 심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과 달리 고사리는 그것이 본래 지닌 생명력에 기대어 밭을 이룬다. 고사리가 이 땅에 자리잡은 것은 사람보다 훨씬 먼저인 4억 년 전 고생대부터. 음지건 양지건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머리 쳐드는 고사리에게 너른 땅까지 주어졌으니 말 그대로 ‘고사리순처럼’ 우후죽순 피어오른다. 매해 퇴비를 주고 김을 매긴 하지만 따로 심지 않았으니 자연이 준 선물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산의 잡관목을 베고 기다리니 고사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고사리로 뒤덮이기까지 5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자연의 선물, 사람의 땀으로 받다
자연이 준 선물이라지만 공짜는 아니다. 한창때 하루 수확량은 비료 포대로 약 50여 개. 누군가는 소일거리 삼아 뜯는 고사리라지만 그것도 취미일 때나 즐거울 따름. 산등허리에 매달려 고사리를 채취하고 풀을 메다 보면 온몸이 금세 땀범벅이 된다. 갓 올라와 옹주먹을 쥐고 있을 때 끊지 않으면 금세 억세지는 고사리 특성상 하루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부부가 할 수 있는 적정량은 2,000평 정도인데, 그 세 배를 하고 있으니 손이 더 필요한 형편이에요. 우리 동네에는 다들 70대인데 어르신들이 산을 오르며 고사리를 끊기가 어디 쉽나요. 오늘도 막내딸이랑 처형이 와줘서 겨우 일을 마무리했어요.”
여타 작물과 달리 고사리는 수확한 다음의 일이 더 많다. 독이 있는 고사리를 삶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말리는데 어느 것 하나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과정이 없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팔팔 끓인 물에 고사리 7~8포대를 넣어 푹 삶는데, 불씨를 지키고 있는 일도 고되지만 중간중간 쇠스랑으로 뒤집고 퍼내는 일도 만만찮다. ‘후욱후욱’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잦아지는 장헌용 생산자의 숨소리가 귓가를 오갔다.
푹 삶아진 고사리를 말리는 일은 아내의 몫이다. 햇볕에 늘어놓고 한나절 동안 바짝 말린 후 비닐 포대에 담아 창고에 보관하다 조합원이 찾으면 그때그때 소포장해서 보낸다. 삶고 말리는 일을 하루에 예닐곱 번 반복하다 보면 부부의 낯도 어느새 고사리처럼 거뭇해진다. “그래도 올해는 고사리가 잘 되어서 몸은 힘들어도
기분이 좋아요. 중국산 때문에 고사리 농사짓는 사람들이 참 힘든데 한살림에서는 약속한 가격을 지켜주니 풍년에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죠.”
부부는 이야기 내내 고사리를 ‘끊는다’고 표현했다. 다소 생소한 표현을 쓰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실제로 고사리를 끊어보니 ‘딴다’거나 ‘꺾는다’고 하지 않는 까닭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고사리 대궁을 잡고 아래에서 위로 훑으며 살짝 힘을 주니 의도치 않은 곳에서 적당하게 끊긴다. 사람이 억지로 꺾거나 따는 것이 아니라 고사리 스스로 가장 알맞은 부분을 끊어낸 느낌이다. 제 몸을 끊어 내어 준 고사리를 산비탈에 무릎을 대고 허리 숙여 맞이한다. 고맙다. 네 덕에 올해 한가위도 풍성하겠구나.
고사리, 재배에서 공급까지
키우기- 고사리가 드문드문 자라기 시작하면 잡목을 베어 고사리가 자랄 땅을 마련한다. 생명력이 강한 고사리는 따로 심지 않아도 금세 밭을 이룬다.
끊기- 고사리 채취는 고사리순이 막 올라오는 4월 초순부터 6월 초까지 가능하다. 줄기의 대궁 부분을 잡고 손으로 끊는다.
삶기- 가마솥에 물을 가득 담고 나무를 지펴 끓인다. 물이 펄펄 끓으면 고사리를 넣고 삶으며 중간에 한 번 뒤집는다.
말리기- 삶은 고사리를 햇볕으로 바짝 말린다.볕이 좋을 때는 한나절, 흐릴 때는 이틀간 말려 물기를 제거한다.
포장하기- 말린 고사리는 비닐 포대에 넣고 창고에 보관했다가 주문을 받고 포장, 발송한다. 습기가 없는 고사리가 부스러지지 않도록 주의해 포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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