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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기획과 선전이 난무하는 물의 날을 우려한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염형철([email protected])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물의 소중함을 깨닫고 각자의 역할을 실천하자고 세계가 약속한 날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 기념식을 열어 각종 훈장을 수여하고, 언론이 물 관련한 각종 기획을 싣는 이 날은 환경운동가에게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날이다. 곳곳에 넘쳐나는 기사들이 사실과 맞지 않거나, 기업이나 정부의 편을 들기 위한 거짓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물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물정책의 현황을 점검하고, 빈번히 등장하는 왜곡된 인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수난받는 낙동강과 섬진강
다른 이야기. 동해안인 경북 포항에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73년이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제철입국(製鐵立國)을 주창하며 포스코를 세 차례 증설했다. 1983년엔 연간 생산량이 910만 톤에 달했고 필요한 용수를 낙동정맥 넘어 영천댐에서 끌어왔다. 영천댐은 대구를 가로지르는 금호강 상류에 있는데, 1980년에 완공되어 26km의 터널을 통해 9640만 톤의 용수를 포스코에 공급하고 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은 상류에 댐을 두고 수량의 대부분을 산맥 너머로 보내다 보니 원래 물길인 대구를 흐를 때는 도랑 규모로 줄어들었다. 줄어든 수량은 수질 악화로 이어져 1980~1990년대 내내 금호강은 썩고 냄새나는 오염의 대명사가 됐다. 포스코 영광의 이면에는 금호강의 눈물이 존재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금호강의 유량 부족을 해결하고, 포항으로 보낼 물의 양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낙동강 상류 반변천에 위치한 임하댐으로부터 35km에 달하는 영천도수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이 한창이었던 시기에는 추가 안정성을 확보한다며, 임하호와 안동호를 연결하는 1.9km의 도수로를 또다시 건설했다. 이제 낙동강 최상류의 물은 금호강을 가로질러 낙동정맥을 넘어 동해로 흘러가게 되고, 낙동강의 본류는 그만큼 물이 줄어들어 수질이 악화되고 생태계가 취약해졌다. 만약 포스코의 위치가 포항이 아니었다면, 포스코가 많은 용수를 필요로 하는 제철소가 아니었다면, 낙동강의 이 혼란과 비용 그리고 생태계 교란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물 정책은 국토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정책은 자연을 거스르는 수많은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와 예산을 쓰면서 지탱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요즘 대구의 취수원을 구미 상류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부산시민에게는 진주 남강댐을 취수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부추기고 있다. 이는 대구와 부산 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다. 당장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구미보와 남강댐의 물을 대구와 부산에 공급하고 나면, 그 하류의 수질과 생태계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례는 광주와 전남 서부에서 영산강의 취수를 포기하고, 섬진강·보성강·탐진강의 물을 받아쓰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광주시 이남에 해당하는 영산강 하류의 수질은 농업용수로도 사용하기 어렵고, 생태적으로는 황폐화됐다. 또한 사회적 관심은 바닥인 상황이다. 결국 대구와 부산의 취수원 이전은 구미 이남의 낙동강 본류와 진주 아래의 남강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곳에서 채수하는 수량은 대구와 부산에서 필요한 양에 턱없이 부족하며,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울산과 서부 경남 그리고 경북 남부 지역에 대책을 마련할 수도 없다. 그러니 긴 도수로를 깔아 물을 끌어 오는 것은 '정치적인 이벤트'일 뿐이지, 낙동강 물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게다가 상수원 보호를 위해 남강댐과 구미보 상류 지역은 영원히 개발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또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위에서 잠시 거론된 또 다른 이야기. 섬진강에는 섬진강댐이 있고, 지류인 보성강에 주암댐, 보성강댐, 동북댐 등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댐에 담수된 물의 85%가 유역 외로 유출된다. 농업용수나 수력발전을 목적으로 전주권과 광주권 그리고 순천만으로 흘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막상 섬진강 본류의 물은 크게 줄었고, 하류에 위치한 광양은 만성적인 물 부족 지역이 됐다. 부족한 정도를 넘어 바닷물이 섬진강을 역류해 와서 10km 상류까지 염해 피해를 끼칠 정도다. 그렇다고 상류에서 유역 변경해서 얻은 이익이 하류의 피해를 상쇄할 정도로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개발이 제멋대로 진행된 결과 전체의 합리성은 훼손되고, 생태와 수질은 극단적으로 파괴됐다. 하지만 농업용수댐은 농어촌공사에, 전력생산댐은 한국수력원자력에 관리 권한이 있다. 다목적댐은 수공에 관리 권한이 있다. 그러니, 이들을 조정하는 일은 난망하다. 강이 제 모습 비슷하게라도 흐르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4대강 사업 완공하면 홍수·가뭄 사라진다더니
정부는 지난해 가뭄 소동에 자신감을 얻은 듯, 이제는 수공을 통해 20억 원 규모의 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4대강에서 9.8억 톤의 물을 끌어서 지천의 댐이나 저수지로 공급하는 '제2의 4대강 사업'을 위한 용역이다. 그런데 그들이 물의 수요를 추정하는 방법이 참으로 가관이다. '수요 기관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그것을 더해 모은 값이 9.8억 톤이니 이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수입이 얼마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주변의 요구대로 퍼주겠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가계부를 쓰는 셈이다. 최근에 정부가 건설한 공주보 하류에서 보령댐 연결 도수로는 하루 11.5만 톤을 비상시에만 공급하는 데도 건설비에만 무려 625억 원을 썼다. 더러운 녹조 물을 정수해서 방류하려면 또 매년 관리비 들어 가게 된다. 만약 9.8억톤을 같은 방식으로 퍼 올린다며 무려 10조의 예산이 소요되고, 매년 수천억 원씩의 운영비를 또 써야 한다는 의미다. 4대강 사업만 완공하면 홍수도 가뭄도 사라지고, 생태는 살아날 것이라더니. 이제는 잘못 만들어진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또다시 제2의 4대강 사업을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물 정책은 뒤죽박죽이다. 20개의 법률과 7개의 부처가 분할하고 있으며, 이들의 지시를 받는 수십 개의 기관이 나뉘어져 있다. 국가 차원의 물 정책 방향도 없고, 부처 간의 협력도 없는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다. 정부 물 정책의 부실과 억지 사례를 물 수요-공급 예측과 관련해서 세 가지만 살펴보자. 국가 물 정책의 최고 계획으로 5년마다 수립되는 1991년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에 의하면 '2011년엔 물 수요량이 연간 370억 톤에 달하는데 공급량은 351.4억톤에 불과해 18.7억 톤이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1년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에서 확인한 2011년의 실제 물 수요량은 340.5억톤에 불과했으며, 공급 가능량은 344억 톤으로 3.5억 톤의 여유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계획의 수요 예측은 실제 사용량보다 무려 29.5억 톤(370억 톤 - 340.5억 톤)이나 많았다. 즉 팔당호(2.5억 톤 규모)의 12개 규모만큼이나 과다 추정하면서 이를 근거로 댐 건설을 주장했던 셈이다. 또한 1990년 이후 건설된 댐들에 의해 약 30억 톤의 물 공급을 늘렸음에도 공급 가능량은 도리어 7.5억 톤(352.4억 톤 – 344억 톤)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그 사이 가장 많은 물을 사용하는 농업의 경우 경지 면적이 20%나 줄었는데도(1991년 209만ha -> 2015년 167만ha) 농업용수는 계속해서 158억 톤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부는 공급 가능량이 줄어든 부분에 대해서는 '1991년에는 평시의 물 공급 능력을 기준으로 했는데 2011년에는 과거 최대 가뭄 시점의 공급능력을 계산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나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수요도 최대 가뭄 시기에는 절수 등의 통제 프로그램을 작동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함께 조정했어야 한다. 이렇게 논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지표상으로는 물이 남아돌고 있는데도, 정부는 또 '제2의 4대강 사업'을 통해 물을 더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7726" align="aligncenter" width="600"]


'불통의 구조물' 된 4대강, 제대로 평가하자
'4대강 사업'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토목사업이었다. 하지만 훼손된 우리의 강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복원 계획'만으로 부족하다. 국토교통부, 정치인, 토목 업체, 언론, 전문가로 이어지는 강고한 토건 세력의 결탁이 한국의 물 정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전으로 국민의 인식이 오염된 상황에서 4대강만 따로 떼어 내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시설을 해체하거나 강의 구조를 복원하는 기술을 제시해 봐야 복원으로 가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의 해법은 훨씬 근본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물 정책의 주체를 바꾸고, 국민의 잘못된 상식까지 무너뜨려야 강이 제대로 흐를 수 있다. 결국 환경단체·전문가·시민뿐만 아니라, 개혁적인 정치인과 관료까지도 함께할 네트워크를 작동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당장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첫 번째 과제] 물 정책 연결할 '컨트롤 타워' 갖춰야
이미 거론한 것처럼 한국의 물 정책은 정부 차원의 방향이나 비전이 없고, 각 부처마다 정책을 일관성 없이 추진하고 있다. 물론 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시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통로도 없다. 그래서 물 정책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공동으로 물 정보를 생산하고 관리하며, 부처들이 업무를 협의 조정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충남 서부에 가뭄이 들었다고 소동을 벌이면서도 어느 부서도 책임지거나 나서서 조정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필요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의 물 정책을 큰 틀에서 평가하고 정리할 컨트롤 타워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물 문제는 댐·관로·정수장 같은 거대한 시설의 부족이 아니라, 이들을 연결하고 관리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 부처의 거대한 투자가 아니라, 강 유역 내부 구성원의 요구와 생각을 조율해서 지역에 필요한 시설들을 세워야 한다. 이런 거버넌스가 작동한다면, 낙동강 하구에 하천유지 용수를 공급하겠다는 영주댐 같은 허황된 구조물은 계획될 수 없다. 따라서 물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체계를 변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중앙부처의 탁상공론을 지역(유역)의 현장 거버넌스로 옮기는 '물 기본법'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물 관련 분야의 20년 된 묵은 숙제다. [caption id="attachment_156073" align="aligncenter" width="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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