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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살림은 예술이다

목, 2014/12/18- 08:57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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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예술이다
입력 2014-11-24 11:33:39 | 수정 2014-11-24 오전 11:40:00

마 전 경기문화재단에서 재미난 학술대회가 열렸다. 여성영화제 이혜경 대표와 가배울의 김정희 대표, 한국학과 여성미술사를 연구한 젊은 학자들이 1년간의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주제는 ‘살림문화’였다. 이날 소개된 19세기의 여성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는 총 5장으로 식, 의, 경제, 건강과 의약, 민간풍습 등 조선 후기 살림살이의 거의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기술된 가정학 총서로 학문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훌륭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남성 실학자의 이름은 숱하게 들었어도 빙허각 이씨는 처음 접했다.

더 부끄러웠던 것은 바느질과 자수에 대한 것이다. 광복 전 일본의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는 100여 명의 한국 여학생이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화를 전공했던 나혜석이 사회적 질타를 받으며 행려병자로 죽자 당시 많은 여성이 집안과 사회의 반대가 덜했던 자수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자수는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사회의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의 예술혼이 들어간 여성들의 보자기와 자수는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떠나 현대미술에서는 규방공예라는 틀에 갇혀버리고 만다. 단지 실과 바늘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생활에 긴요한 실용성이 있다는 이유로, 여성이 한다는 이유로 미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폄하됐다. 변기나 오줌조차 소재로 삼은 수많은 현대미술에는 그토록 열광했지만 여성들의 살림살이를 연상시키는 작품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미국의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함께 바느질했던 흑인 여성들의 ‘퀼트’를 하나의 예술장르로 만들었다. 여성의 힘이 예술의 기준 자체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문제는 살림이 우리 삶에서 귀찮거나 하찮은 일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매일 먹을 밥을 짓고 집을 치우고 쉬는 것보다 돈을 버는 일이 더 생산적으로 보인다.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갈등을 조정하며 공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때론 부질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 가족이나 동네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보험이나 주식을 걱정하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아니라 돈이라고. 자수는 예술이 아니며 살림은 예술이 될 수 없고 살림살이는 상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생명을 돌보고 기르고 함께 살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언제쯤 성장주의와 시장에 빼앗긴 살림의 문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식구들과 오붓하게 나눠 먹고 이웃과 함께 사는 따뜻하고 신나는 마을이 그립고 그립다. 여성들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 자신과 타인을 보살필 때, 살림과 살림살이가 예술처럼 존경받을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민주주의가 시작될 것이다. 밀양의 감이 공판장에 상자당 3000원에 나왔다는 ‘카톡’ 메시지가 왔다. 상·하차비 1000원, 박스비 1000원, 운반비 1000원 빼면 남는 게 없다고 배추도 주문해달란다. 미칠 노릇이다. 빚 내서 집 사라더니, 무슨 나라 살림이 이렇게 엉망이냐 말이다.

2014 여성신문 '여성이 평화입니다'

1315호 [오피니언] (2014-11-18)
장이정수 /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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