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 듣기만 해도 설레게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황홀경을 흔들어 깨운 것은 바로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미니팜에서 감 특판을 구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보여준 말도 안 되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공판장에서 80과가 든 감 1박스를 3천원에 사준답니다. 박스비가 천원, 인건비가 천원, 상하차비가 천원. 이렇게 감을 팔아서 10원도 남길 수 없는, 아니 그 사이 들어간 걸 하면 오히려 손해를 봐야 하는 농사를 짓는 할머니의 이야기. 송전탑이 들어서서 그것 바라보는 일 만으로도 속에서 불이 나는데 말입니다.
고정 마을 이순출 할머니의 송전탑과 농사,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우창]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와 함께 자서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순출 할머니의 일대기를 정리했던 연대활동가는 할머니를 '슈퍼우먼'이라고 표현했다.
웃지 못 할 풍년시절
김우창 (이하 김) : 올해 감 농사... 많이 어려우셨죠?
이순출 할머니 (이하 순출 할매) : 올해는 그랬지. 가격 때문에 너무 힘든데 또 되기는 되게 잘 됐고. 2년 딸 감을 올해 다 땄다. 작년에는 900박스 밖에 못 땄는데, 올해는 다 땄으면 2000박스도 넘는다. 그러니까 되기는 잘 됐는데 시세가 헐으니(싸니) 몸만 골병들고 쥐는 돈은 적고.
김 : 저번에 들으니까 감 한 박스가 3000원 이라고 하던데요.
순출 할매 : 맞다. 그래서 나도 저번에 더 따려다가 말았다. 그냥 뒀다. 뒤에 가면 못 딴 감이 한 가득이다. 우리는 박스 보조가 안 되면 하나에 1070원이다. 1070원 떼지, 카바예트도 돈이 적게는 안 들어가. 테이프, 테이프 그것도 돈 많이 들어가. 한 10만원 넘게. 카바예트는 20만원 넘게. 또 감나무에 약 치거든? 약 한 번 치려면 30~40만원 들고. 세 번씩 친다, 그거 들어가지. 비료 값 들어가지. 이래저래 다 떼고 나면 남는 거 없어. 3000원? 오히려 우리가 감을 팔고도 500원 1000원 물어줘야 할 판이다.
김 : 이번에 미니팜에서 특판을 진행한 것도 그래서였거든요. 특히 할머니가 받은 문자. 이번에 도움은 많이 됐어요?
순출 할매 : 그렇지. 많이 됐다. 얼마나 고맙던지. 청과(농협)에만 냈으면 우린 망했을기다. 박스 값 떼고 뭐 떼면. 뭐가 남노. 그렇게 연대자랑 미니팜에서 많이 팔아줘서 그냥저냥 올 겨울 살 만큼은 됐어.
택호 대신 이름 부르는 정겨운 마을을 찢은 칼날.
김 : 할머니 고향은 어디세요?
순출 할매 : 고향은 상동면 신곡이야. 여기서 그리 멀진 않아. 거기서 자라고 이리로 시집 왔지.
김 : 근데 다른 마을은 거의 ‘무슨 댁’처럼 택호를 부르던데. 고정마을은 안 그런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들 부를 때도 성함으로 부르고. 그러면 할머니도 택호 있어요?
순출 할매 : 내? 대봉댁. 고향에 있던 자그마한 뒷산 이름이 대봉산이어서 그렇게 붙여주더라. 우리 고정마을은 택호 대신 이름을 부른다. 지금도 내 팔 십 줄이 다 되가는데, 여전히 ‘이순출, 이순출’ 그렇게 부른다.
김 : 택호 대신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있어요?
순출 할매 : 택호 부르는 마을은 아마 그 사람 이름도 모를 거야. 우린 이름 부르니까 그만큼 더 정겹고 살가웠어. 그런 마을이었는데. 참 안타깝지. 저 송전탑 때문에. 우리 문중에는 지금 찬성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두 사람. 안타까운 건 그래버리면 집안사람이 먼저 등을 돌려버리더라고. 그래 사람들이 가만있나. “왜 그런 짓(송전탑 공사에 찬성을 한 것)을 하노”라고 물어보지. (반대하는 사람들)한 사람이 한 마디만 해도 (찬성한 사람은) 정신없는 거지. 문중에 와서 입도 못 뗐다고 하데.
김 : 다른 마을처럼 고정마을도 마을끼리, 집안끼리 쪼개졌네요.
순출 할매 : (찬성한 이가) 이번 추석에 벌초하러 왔다 카데. 근데 얼굴은 못 봤어. 사람들이 다 싫어하니 문중에 못 오는 거지. 문중도 이 철탑 때문에 갈라져 버렸어. 알고 보니 자기네 할매, 할배, 아버지, 어머니 산소만 딱 하고 간기야. 이놈의 철탑 때문에 동네도 두 동네가 돼버렸지, 집안간도 갈라져 버렸지. 문중도 갈라졌지. 말이 아니다. 참 인심 좋고 서로 참 갈라먹고 그래 산 동네인데. 에이 진짜 칼날같이 너무 무서워. 반대하는 사람은 반대한다고 그러지. 찬성한 사람은 왜 안 따라주느냐고 그러지, 너무 무서워. 너무한 세월이다.
누가 알겠노?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
자그마한 체구의 이순출 할머니지만, 한전이나 경찰과 싸우는 곳이라면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기억하는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김 : 할머니도 다른 어르신들처럼 한전, 경찰과 많이 싸우셨죠?
순출 할매 : 그렇지.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할아버지가 그런데 다 나갔고. 돌아가시고 나선 내 일이 됐으니까. 정부한테 우리가 밟힌 게 얼마나 많이 밟혔나? 경찰들한테 우리가 뜯겨가면서 이때까지 몇 년을 밟혀왔나. 너무 억울하다.
김 : 혹시 그렇게 싸우면서 무섭거나 두려우셨던 적은 없으세요?
순출 할매 : 여럿이 데모하러 가면 좀 나은데. 그런 날이 있었다. 절대로 잊지 못한다. 새벽 4시에 전화가 왔어. 한겨울에 4시라고하면 밤 중 아닌가. 전화가 와서 ‘데모하러 와라’ 그라데. 그래서 “어디로 갈꼬?” 하니 고속도로 다리 밑 농성장으로 오라는기야. 그래서 부리나케 일어나서 나갔지. 누구 혹시 같이 갈사람 없는가 싶어서 요 (고정)삼거리에 서 있는데 뒷집 송순복이가 나오는 거야. 송순복이 “아즈메, 고속도로 다리 밑으로 오라는 데요?” 라고 해서 갔지. 깜깜한지 앞에 가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이는 거야. 올라가니 한전놈들이랑 경찰놈들이 새까맣게 둘러싸고 있어. 이미 새벽에 다 올라 간 거지. 근데 우린 둘만 간거고. 그래서 그게 최고 기억에 남는 거야. 다리 밑 공사 시작할 때 겨울.
김 : 그럼, 새벽에 올라가서는 계속 그곳에 계셨던 거예요?
순출 할매 : 둘 다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핸드폰이 없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이리로 오라고 전화는 해야 하는데. 저놈들 두고 (핸드폰 가지러)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어찌해야하는가 기가 막혔어. 아무것도 없는 복판에 둘이 앉아있지, 우리 주위에는 새까맣게 경찰이 있지. 그래서 내가 (송순복한테) 물어봤지. “안 되겠다. 내가 갈래, 니가 갈래? 누구든지 가서 연락을 해야겠다. 더 나이 많은 내가 혼자서 지키는 게 낫지 않겠나. 니가 내려가서 전화 좀 해 사람들 데려와라.” 근데 말이 쉽지. 하나만 남겨두고 어찌 갈 수 있겠나. 아무리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빌어도. 한전놈도 안 주고, 경찰놈들도 없다고 하지. 안 빌려 주는 거야. 나중에는 새벽부터 나오느라 가스 불에 뭘 올려놨는데, 탄다고. 집에 불난다고 신고해야하니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지. 근데도 아무도 안 빌려 주는 거야. 그래 갖고 이 사람(송순복)이 내려갔지. 길가에 서 있던 차에 문을 두드려서 핸드폰을 빌렸대. 그래서 빌려서 전화를 하니, 나머지 사람들은 저기서 싸우고 있는 거야. 고답가서. 우리는 여기로 오라 해놓고. 전화 받고 사람들이 왔는데도 10시 인기라. 근데 참 이상하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올라오는데 몸이 막 떨리는 거야. 사람이, 우리 식구가 올라오니까 얼마나 반갑겠노. 오자마자 내가 “너거 밥 갖고 왔나” 라고 물어봤지. 밥 좀 달라고. 사람들이 챙겨온 주먹밥을 먹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그렇게 나겠노 시상에. 한겨울에 109번에서 비닐만 덥고 잘 때도 있었거든? 근데 그때도 사람이 여럿이라 힘이 났지. 근데 이건 뭐 몇 시간 동안 혼자 남겨있지, 경찰들이랑 한전놈들은 계속 공사하려고 장비를 올리지. 어찌나 황망하던지. 황당하더라고. 새벽에 비가 오는데 추워서 이가 부딪혀서 덜덜덜 소리도 크게 나고. 아 진짜 외롭대요. 그렇게 외로운 거는 처음 느껴봤어.
할머니와 함께 살고자 하는 가족의 꿈
김 : 싸우는 것에 대해 자제분들은 어떻게 말씀하세요?
순출 할매 : 자식들, 며느리 자주 전화하고. 감 따는 거 다 도와주고 그런다. 며느리는 여기 오면 밤새도록 나랑 얘기해. 꼭 붙어서 이런저런 얘기 하더라고. 나도 사람 좋아하고 얘기하는 거 좋아하니까. 착한 며느리야. 며느리랑 아들은 여기 들어와서 살끼라고 했다. 근데 내가 안 된다고 했다. “안 된다. 내 혼자만 고생하면 되지. 너가 들어오면 저 밑에 손자들은 여기서 어떻게 공부시키나. 오지마라.”라고 말했지. 그렇게 말려도 들어오고 싶어 했어.
김 : 아, 그럼 아드님 내외가 할머니 모시면서 같이 살고 싶어 하시는 거네요?
순출 할매 : 그렇지. 여기 들어와서 함께 살고 싶어 했는데. 이 전기 때문에 다 날아갔지. 사실 할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농장 팔자고 여러 번 말했다. 이제 전기도 들어온다는데 팔자고 해 싸는 거야. 나는 반대했지. 자식 물려 줄 거라고. 고생해서 어떻게 모은 건데. 너무 안타까워. 억지로 들어오는 거면 모르지만, 저거들이 좋아서 들어오고 싶어 했거든. 며느리도 여기 들어와서 살고 싶다고 했고. 너무 안타까워.
김 : 아드님 내외분이 들어와서 함께 살고 싶어 하는데. 송전탑이 할머니를 여러 번 울리네요.
순출 할매 : 그래. 너무 억울하다. 억울해. 집도 다 선하지에 들어 가있지. 농장도 그렇지. 농장은 집보다 더 가깝다. 죄다 300미터 안에 들어가 있다. 산소도 전부 선하지에 들어가 있어. 우리 영감 산소도 그렇고. 이런 땅에 어떻게 아들, 며느리, 손자를 들어오라 하겠노. 날 모실라고 들어와서 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지. 요새 사람들 안 그렇잖아. 어른들 모시기 싫어하고. 근데 이렇게 되니. 답답하지. 법도 참 더러운 법이야.
정겨웠던 마을과 이웃, 그리고 가족의 꿈도 송두리째 빼앗긴 이순출 할머니. 그럼에도 할머니에게 힘이 되는 것은 가족입니다. 뻔한 답이 예상됐지만 듣고 싶었습니다.
김 : 할머니는 그럼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소원, 꿈같은 거요.
순출 할매 : 최고 소원은 철탑 뿌시는거지. 저걸 뿌셔야 가족들이 여기 들어와서 살자나. 저거 뽑지 못하면 아들은 절대로 내가 못 들어오게 할 거야. 며느리 손자까지 절대 안 된다. 나 하나면 족하지...
철탑공사는 거의 완료됐고, 곧 전기도 흐를 것이라고 합니다. 한전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말하고 있지만, 지금도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순출 할머니처럼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죠? 전기는 할매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요.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편리한 삶 뒤에는 한 가족의 꿈을 박살내는 진격의 송전탑이 서 있습니다. 철탑을 뿌시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질까요? 당신이라면, 당신과 함께라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밀양을, 밀양의 할매들을 기억해주세요. 그들을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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