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밭마을 김길곤 할아버지
한전의 시험 송전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시작한 것이 2014년 12월 26일입니다. 벌써 한 달도 훌쩍 넘었습니다. 115번 송전탑 앞에 세운 농성장에서 그 동안 참 많은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처음 알게 된 주민도 있고, 안면은 있지만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주민도.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많은 주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한 분을 소개하려합니다. 농성을 시작한 12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며 “한전과 경찰은 우리들이 왜 이렇게까지 반대하고 싸우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시던 평밭마을의 김길곤 할아버지입니다.
뇌줄중 앓고 있던 나를 치료해 준 것이 이 평밭마을과 화악산이지요.
김우창 (이하 나) : 다른 마을도 참 아름답지만, 이 평밭마을은 유독 아름다운 것 같아요. 화악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경치도 예쁘고, 공기도 좋고요.
김길곤 할아버지 : 맞습니다. 참 예쁘죠. 공기도 맑아요. 내가 여기로 이사 온지가 올해로 19년이나 됐는데.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나 : 그럼 이곳이 고향이 아니신가 봐요?
김길곤 할아버지 : 무안이 고향인데예. 밀양시 무안면. 그래도 여기 온지가 거의 20년이 다 됐으니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나 : 고향인 무안면을 두고 왜 이곳으로 이사를 오신 거예요?
김길곤 할아버지 : 음 어디서 살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곳보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못 찾겠더라구요. 그래서 이곳에 오고 싶었어요. 참 좋잖아요. 여기서 자면 도시에서 자는 것 보다 기분도 좋고. 아침에 나가면 공기가 참 좋아요. 원래는 3가구밖에 없었는데. 몸 안 좋은 분들이 수양하러 많이들 왔어요. 지금도 몸 안 좋은 사람들이 쉬러 많이들 오거든요.
나 : 아 맞아요. 사라할머니도 이곳에 오신 뒤로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어요.
김길곤 할아버지 : 아이고 말도 마이소. 그 할머니는 지금도 뭐 쨍쨍합니다. 허허허... 나도 뇌졸중 앓았었는데.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안 하면 모르더라구요, 주위사람들은. 내가 뇌졸중을 앓았었는지를.
나 : 뇌졸중을요?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김길곤 할아버지 : 여기 처음 올 무렵에 뇌졸중을 앓고 있었어요. 한 2년 전만 해도 운주암까지 매일 걸어 다녔어요. 물론 운주암까지 가는 데 꼬박 한 달이나 걸렸어요. 첫 날은 집에서 조금밖에 못가고 힘드니까 돌아오고. 대신 다음 날은 조금 더 가고. 조금 더 가고. 그렇게 해서 한 달이 되니까 운주암까지 갈 수 있게 되더라구요. 비 오는 날 빼고는 매일 갔어요.
나 : 평밭마을과 화악산이 정말로 회장님(평밭마을 자치회 회장이라 마을 사람들은 김길곤 할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의 건강을 되찾아 준거네요?
김길곤 할아버지 : 그럼요. 화악산 덕분에 건강을 찾았죠. 봄 돼서 산 정상에 가면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보기 좋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참 좋아요. 정상에서 보는 단풍이. 그래서 부산사람들이 오면 하나같이 “이거 뭐 내장산에 갈 필요 없겠네.”라고 말을 해요. 그만큼 예쁘다는 거죠. 저 계곡에는 가재도 있어요.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반딧불도 예전에는 있었고. 그건 쪼끔 오래된 얘기지만. 근데 765(76만5천 볼트 송전탑)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지요. 저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 받고. 그것만 없었으면 여기가 참 살기 좋은 곳이라.
밀양주민들에게 있어서 송전탑 이야기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입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주제인 송전탑 그리고 전쟁 같았던 싸움들.
나 : 지금까지 10년 넘도록 한전을 상대로 싸워오셨는데. 가장 힘들고 끔찍했던 적은 언제였어요?
김길곤 할아버지 : 물론 6월이죠, 행정대집행이요. 그건 참. 완전히 폭거였어요. 행정대집행은 원래 공무원이 하기로 돼있거든요. 경찰이 하는 게 아니고. 경찰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있는 거고. 근데 그날은 완전히 경찰이 해버렸지. 뭐 할머니들이야 고작 해봐야 열 몇 명 뿐 이고. 외지에서 연대자들이 몇 사람 와 있었고. 근데 경찰은 3000명이나 왔잖아요. 할머니 몇 사람 데려 갈라고 몇 백 명, 몇 천 명이 온 거 아닙니까. 할머니들, 힘 센 장정들이 건드리면 넘어갈 정도로 힘도 없는데. 그래가지고 이 힘없는 할머니들이 경찰들 폭행했다고 몇 백 만원씩 벌금 내게 하고. 아이고. 기가 막힙니다. 이런 할머니들한테 맞을 거면 경찰하지 말아야지. 그게 무슨 경찰이야. 배지 반납해야지.
침착하게 이야기를 해 오시던 김길곤 할아버지였지만, 참혹했던 6월의 기억을 떠올리니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그날의 상처들.
김길곤 할아버지 : 그때 목에 쇠사슬을 매고 다 같이 있었거든. 근데 경찰들은 절단기 가지고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을 후벼 파서 쇠사슬을 잘라 버리고. 소 잡는 칼로 천막을 북북 찢어 버리고. 경찰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근데 버젓이 자기들이 맨 앞에서 하니까. 그땐 워낙 사람이 없으니까. 몇 사람 안 되니까 할머니들이 급한 대로 발가벗었어요, 억울하고 분하니까. 그 상태로 구덩이 파놓은 곳에 앉아 있는데 순경들이 들어오는 거야. 근데 여경이 아니라 남자 순경들이었어요. 아휴. 남자 순경들이 들어와서 발가벗은 할머니들을 거꾸로 매달아서 밖으로 데리고 가는데. 그건 정말 아니잖아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 경찰들이 또 수녀님들의 머리 수건을 막 벗기고, 수녀님들을 힘으로 몰아내고. 그렇게 해서 한 수녀님은 팔을 크게 다쳤어요. 몇 달 고생했다 아입니까.
나 : 그날 할아버지도 129번에 계셨군요. 화도 나고 분통이 터졌겠어요. 몸을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김길곤 할아버지 : 몸은 괜찮아요. 억울하죠. 화도 나고. 물론 우리가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들은, 이 할머니들은 절대로 나쁜 짓 한 거 아니거든? 이 할머니들이 그리 하는 거 뭐 때문에 하겠어요? 아랫마을(위양마을)의 할머니도 그렇고. 다들 선산도 있고 이곳이 고향땅이거든. 어릴 때부터 논밭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거든요. 땅을 닮아서 아주 순박하고 우직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자연이 그렇듯이 흙이 그렇듯이. 정직 하거든예?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처럼 뇌물 같은 거에 홀딱 넘어가는 사람 절대 아닙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지키겠다는 거 아닙니까. 평생 논밭을 일구고 그것을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 그거 밖에 없습니다. 나도 그렇고. 이젠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무슨 돈을 바라겠어요. 무슨 보상을 바라냐구요.
그렇게 두렵고 치가 떨리는 시간들을 보냈으면서 여전히 합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길곤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250여 세대의 밀양 주민들. 겁이 많은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던질 수 없는 질문.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이 힘든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는지를요. 아, 나라면 10년간 싸울 수 있었을까...
나 : 그렇게 억울하고 화도 나고.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는 지난 10년이었을 텐데요, 무엇이 할아버지를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게 만들었어요?
김길곤 할아버지 : 다른 거 없어요. 이 마을 사람들 돈 몇 푼 줘도 싫다고 안 받아요. 이 살기 좋은 마을을 이대로 내 자식에게, 후대에게 주고 싶은 거 그거 밖에 없어요. 화악산이 내뿜는 상쾌한 공기, 이걸 어떻게 돈으로 매길 수가 있겠어요. 우린 돈이 아니라 이 자연 그대로를 주고 싶어요. 내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나은 것처럼, 이 좋은 곳에서 옹기종기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우리는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 집에 도둑이 들어오는데 어느 집주인이 가만히 도둑을 보고만 있겠어요? 당연히 도둑을 막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맞는 거잖아요. 그게 정당방위인데. 우리 땅과 마을을 침범하려는 도둑을 막고 있는데 도리어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니까. 무슨 세월이 이렇게도 수상한지.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어요. 그 분 땅이 128번 송전탑 부지였거든. 할아버지가 도통 합의를 안 해주니까 한전놈들이 공탁금을 걸어놓고 공사를 막무가내로 강행했나봐요. 할아버지야 당연히 모르고 있었는데, 떡하니 세금 고지서가 날아왔다고 하네. 그래서 그런 적이 없다고 이상하다고 해서 알아보니 그게 토지 거래에 대한 세금이라는 거야. 허 참. 분명 공탁금은 찾지도 않았는데. 합의를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법인지는 몰라도 한전이 그냥 공탁금을 걸어놓고 이 땅을 사버린 거야. 아니 훔쳐간 거지. 그래서 세금이 나와 버린 거지. 본인도 모른 사이에. 도둑이 도리어 주인에게 큰 소리 치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되지.
나 : 정말 수상한 세월이네요. 합의한 적도 없는데 토지는 이미 거래가 되니. 행정대집행도 그렇고 이런 한전과 국가의 동의 없는 강행들이 계속되면 힘이 빠질 것도 같은데.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김길곤 할아버지 : 있지. 연대자들이지. 연대자들이 없으면 우린 이렇게 못했어요. 그날도, 행정대집행날에 경찰들이 모든 길을 차단해서 연대자들을 움막으로 못 들어오게 했어요. 그때 미리 들어온 수녀님들이 몇 분 계셨고. 나머지는 평밭마을의 남한사람-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때 수녀님들이 어떻게 올라오셨는지 아십니까? 승용차 뒤 트렁크에 웅크린 채 여기까지 왔어요. 그 좁은 공간에 둘 셋이 30분 이상 여기까지 오는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트렁크에서 내려 수녀님들과 눈이 마주치는 데 어찌나 미안하고 고맙던 지요.
나 : 그날 새벽에 험한 산을 타고 넘어온 연대자들도 꽤 많더라고요. 밤중에도 경찰들이 온 길을 막고 있었으니까요. 밑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발만 동동 굴릴 순 없었고. 그래서 연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적게는 3시간에서 많게는 5시간 걸려서 산을 넘어 왔더라고요.
지난 12월 28일 한전은 주민들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농성장에 있었는데도 말이죠. 정말로 한전의 말처럼 이대로 끝이 난 걸까요? 이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일까요? 아닙니다. 아직도 밀양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송전탑을 뽑아달라고. 그저 예전처럼 살게 해달라고요. 김길곤 회장님의 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 : 혹시 할아버지도 꿈이나 소원 같은 거 있어요? 바라는 거요.
김길곤 할아버지 : 가장 바라는 것 한 가지는 당연히 송전탑 뽑아내는 거지. 주렁주렁 매달린 송전선도 보기 싫고, ‘지지직’ 전기가 흐를 때 나는 소리도 싫고. 이 마을을, 이 자연을, 우리의 땅과 밭을, 우리를 위협하고 해치는 송전탑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전 주민들과 하는 이 인터뷰가 너무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로 시작을 해도 언제나 송전탑과 경찰, 한전 그리고 처절한 싸움의 기억으로 대화가 흘러가니까요.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목소리는 떨리고.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인터뷰를 계속하는 이유는 상처받은 밀양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 추악했던 그들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물어보는 것이, 듣는 것이 혹시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찌르고 누르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계속 물어보겠습니다. 계속 들을 겁니다. 아직도 밀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끝나지 않은 밀양의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은 자신을 위해 자식을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싸우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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