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오제세 의원은 의료분쟁조정제도 개정을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 하였다.
개정 법안은 피 신청인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조정 절차가 개시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감정서의 민사소송 원용 금지, 감정위원 확대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현재 이 개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 법안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사고 발생 시 피해자인 환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권리구제 장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환자권리’라는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고 정착하는데 있어서도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 소송비용이나 승소가능성을 따져 볼 때 조정 및 중재를 통한 해결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고 의료인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절차를 무작정 꺼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과실이 명백하거나 오히려 법정에서 승소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된다면 실제로 조정 절차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신청건 중에는 의료인이 조정을 신청한 경우도 있어 이 제도에 대한 의료인들의 수용성이 반드시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의료사고를 ‘분쟁’ 으로 규정하고 ‘과실’ 여부 판정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상당히 실리적 측면의 접근방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입증책임전환과 같은 보다 본질적인 제도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승소가능성이 낮은 현실적 장벽이 환자들로 하여금 조정중재제도를 이용하게 되는 유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개정 법안은 입증책임전환과 같은 본질적 변화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며 이 보다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중심에 두고 조직의 기능 확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것이 타당한지 여부는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개정안 중 ‘피신청인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조정 절차 실행’은 낮은 조정참여율(지난 2년간 약 40%)을 제고 하겠다는 것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의료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청인의 조정 신청은 기각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조정참여율과 같은 외형적인 성장에 천착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분쟁조정의 ‘질’을 놓고 본다면 조정참여율 제고는 능사가 아니며 이보다는 그동안에 이루어진 조정이 과연 실효적이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일단, 조정 성립 금액은 대부분 소액 중심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 초기 1년간 조정성립건의 약 75%가 500만원 미만이었는데 이것이 합리적인 조정의 결과로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는지 여부가 분명하지가 않다.
소액 중심의 조정 성립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개정안대로 조정 절차 실행을 강제한다면 가해자인 의료기관이 분재조정신청을 오히려 남용할 여지도 있다. 2014년 들어 조정참여율이 54.1%까지 증가한 것을 보면 조정중재제도가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그다지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정절차에서 진술이나 감정서 등을 소송에서 원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나, 의료사고 현지 조사권 규정의 삭제, 조사 방해 등에 있어 형사처벌 규정을 과태료로 면하게 한 규정 등은 지극히 의료계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법안 개정의 배경이 무엇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피해자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조정절차를 실행하는 강제조항을 삽입하면서 정부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의료계와 ‘거래’를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일정부분 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의료계 모두에게 득이 되는 법안일 뿐 그 중심에 ‘환자’가 없다.
설립된 지 2년에 불과한 조직의 성과와 한계를 성급히 결론지어서는 안 되며 외형적 성과에 치중하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분쟁조정제도의 기능 확장이 능사는 아니며 이를 목적으로 의료계와 담함 했다면 이는 본질적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입증책임전환과 같은 제도적 변화가 보다 우선되어야 할 과제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데일리팜(2014.5.22)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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