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와 현대 기술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
김양중
한겨레 의학전문 기자
해마다 가을에 정기국회가 열리면 국회의원들이 국정 감사(국감)를 한다. 행정부처와 관련 기관들이 얼마나 제대로 구실을 하고 있는지를 국민의 눈과 입으로 평가하는 자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감이 열렸고, 무상 보육을 비롯해 여러 현안들에 대해 정부 정책과 대안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그 가운데 관심 받는 사건 하나가 바로 가습기 살균제였다.
지난해 봄 발생한 원인불명의 폐질환에 대해 조사를 벌였는데 8월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대로 세계 최초로 밝혀진 것이다. 왜냐면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제품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사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 환경운동단체가 최근까지 집계하기로는 8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그리고 최근 언론보도로는 이 살균제로 사망한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고 나온 바 있다. 여전히 환경운동단체들은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 사례는 이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전에 원인불명의 폐 질환으로 숨진 이들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를 사망원인으로 의심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가습기 살균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쓰였다고 하니 그 이후 사망 및 피해 사례를 제대로 조사하면 훨씬 광범위한 피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재조사와 이를 허가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알려지지 않은 피해 사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굴해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람에게 쓰는 어떤 제품이든 건강이나 생명을 해치지는 않을까에 대한 좀 더 철저한 조사 및 허가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물건이나 상품, 제도 및 환경의 변화 등이 건강이나 생명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에 대한 평가도 꼭 필요할 것이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주는 상품이나 환경, 제도의 변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엄청난 의식 변화가 필요한 일인데, 이는 바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의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이 의심이 부족하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나라는 1960~80년대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현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과학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신기술은 과거의 어떤 기술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진보이거나 보수이거나 구분 없이 거의 같다. 물론 진보신문이나 보수신문에서도 그 차이를 찾을 수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온 국민이 과학 및 과학 기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제조사들은 신상품, 신의료기술, 신제품이라는 말만 붙여 상품을 팔고, 소비자들도 이런 말이 붙어 있으면 더 좋은 상품이겠거니 하면서 산다. 언론에서도 신제품, 새 기술이 붙어 있으면 ‘뉴스’를 다루는 속성상 기사화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에서 드러났듯이 이는 사실이 아닐 때가 드물지 않다. 신약이나 신제품의 허가 과정에서는 길어야 몇 년의 관찰 과정을 거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한 평생 사는 동안 즉 몇 십 년 동안의 충분한 안전성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사회에서 쓰이다가 퇴출되는 의약품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한 때 임신부의 입덧을 줄이는 약은 팔다리가 없는 태아를 태어나게 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쓴 관절염 치료제는 심장병으로 환자를 사망하게 해서 퇴출되기도 했다. 감기약의 특정 성분은 뇌졸중을 일으킨다고 해서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서도 퇴출되기도 했다. 신의료기술이라고 하는 로봇수술 등과 같은 데에서도 이런 현상은 일어난다. 로봇수술을 처음 들여온 한 대학병원의 교수도 이의 부작용과 합병증을 알고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각종 부작용 및 수술 피해 사례들이 퍼지고 있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이를 좋은 상품으로 다루고, 환자들은 신기술이라는 이유로 더 좋다고 여기고 있다.
생명은 한 번 해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 어느 분야보다도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됐다고 해도 아직 부족함이 많다. 각종 진단기계, 로봇수술, 신약의 사용 등도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이는 의사들도 환자들도 꼭 알아야 할 일이다. 각종 의학정보가 널리 퍼져 있는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자세는 ‘합리적인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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