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게 된지 1년쯤 지났을 때,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생태미술교실>에 참여하게 되었다. 보통 생태미술 프로그램들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훨씬 많은데, 이 프로그램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미술창작 활동을 통해 활력과 즐거움을 주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주 1회 제주현대미술관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생태예술수업-산호뜨개’였다. ‘생태’와 ‘미술’이라는 주제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산호’라는 주제는 살짝 낯설었다. 제주 바다 속 산호를 실제로 본적이 없고, 크게 관심 가져본 적 없던 주제라서 묘한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제주에 사는 연산호
“제주도 서귀포 인근 범섬, 문섬 일대는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는 연산호 군락지입니다.”
제주도는 연산호 군락지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산호류 종의 수가 160종인데 제주도 바다에 살고 있는 산호류가 126종이라고 한다.
산호는 화려한 꽃이 바다 속에 피어난 것처럼 색이 아름답고, 한 줄기에서 수십~수백 개의 개체가 모여 사는 모양이 신비로웠다. 식물이라 생각했는데, 한 곳에 부착하여 살지만 다른 생물을 잡아먹고 사는 생물이다. 그 중에서도 연산호는 다른 산호들과 달리 부드러운 겉표면과 유연한 줄기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바다 속에서 보면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린 물고기들에게 좋은 피난처가 된다고 한다.
산호가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백화현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있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 살고 있는 연산호 군락도 수온의 변화, 각종 개발사업, 해양오염 등으로 눈에 띄게 파괴되었다고 한다.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전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파괴된 이후에 모두가 나 몰라라 하는 꼴이다.
그림 1. 제주연안연산호 군락(출처: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산호를 뜨개질로 표현하기
부끄럽지만, 제주도에 와서 살면서도 바다환경이나 바다 속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고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바다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할 때 느껴지는 탁 트인 풍경이 좋았을 뿐, 그 안에 생명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 너무 몰랐다. 그래서 그 산호들을 육지로 데리고 올라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친숙하게 하고 싶었다.
‘산호뜨개’는 국제적으로도 진행되고 있는 활동이고, 외국 전시회 등을 통해 활동의 취지와 방법이 알려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처음 시작한 것인데, 그 특징은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 산호뜨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공동작업이다. 여기서 공동작업의 의미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뜬 산호를 한꺼번에 모아서 전체를 구성한다는 말이다. 작품 하나도 의미가 있지만, 산호가 집단으로 생활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모아서 거대한 산호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정해진 디자인이 없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이다. 손뜨개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뜨는 것들이 모자, 가방, 목도리 등(최근에는 수세미도 유행이었다)과 같이 실용적이고, 정해진 도안을 따라 보고 뜨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산호뜨개는 우리가 사용하기 위해 실용적인 것을 뜨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도안도 따로 없다. 바다 속에 있는 구불구불하게 생긴 산호를 닮게 뜨는 거라서 몇가지 기본 뜨개방법만 알면 누구나 자유로운 모양으로 산호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이 두 번째 특징이 산호뜨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가끔은 그런 필요나 쓰임을 다 내려놓고 그냥 ‘존재하기’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산호뜨개를 하는 시간에는 스트레스 받던 일들도 다 잊어버리고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여 만들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산호뜨개의 세번째 특징은 코바늘뜨기를 이용한 구불구불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산호뜨개는 코바늘과 다양한 실을 사용하는데, 코바늘로 짜게 되면 쉽게 구불구불한 곡선을 만들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에 직선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곡선보다 직선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정해진 형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호를 만들다보면 내가 만든 산호가 다른 누군가의 산호와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림 2. 산호뜨개 전시 협동작품 (출처: https://paragraph.to/산호뜨개/)
내 인생의 전시회
8번의 수업을 통해서 산호에 대해 알고, 코바늘을 잡고 산호뜨개 작업을 했다.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수다와 함께 뜨개질 하는 시간은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수업이 모두 끝날 무렵 함께 뜬 산호들을 모아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 물론 8번의 수업 때 뜬 것 외에도 모두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산호를 떴고, 제주도와 서울 곳곳에서 산호뜨개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보내주신 산호작품들을 모아 전시가 가능할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전시회에 작품을 낸다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전시회에 작품을 내는 작가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것은 제주도에 바다가 있고 산호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기에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림 3. 산호뜨개 전시 협동작품 (사진: 이승은)
그림 4. 산호뜨개 전시 개인작품 (사진: 이승은)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제주도에는 한라산, 오름, 곶자왈, 억새밭, 해변 등 아름다운 자연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수많은 관광객들 중에서 바다 속 산호를 보는 사람은 드물다. 서귀포에서 잠수함을 타면 일부 산호를 볼 수 있지만 잠수함이 산호 서식지에 훼손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렇다면 산호는 바다 속으로 직접 다이빙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생생한 아름다움을 협동작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산호뜨개이다.
제주도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의 많은 부분은 제주도를 있게 하는 ‘바다’에서부터 오는 것들이다.
::다음 이야기:: 섬에서 출산과 육아하기
:덧붙이며: 제주바다 관련 책 및 사이트 추천
(1) 바다, 우리가 사는 곳, 핫핑크돌핀스 저, 리리출판, 2019
(2)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 강영삼 저, 지성사, 2015
(3) 제주생태프로젝트 오롯(산호뜨개 관련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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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삶>은 필자가 제주에 내려와서 살고 정착하기까지 2년 동안 지내면서 겪은 제주의 환경, 생태, 생활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승은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제주도민
생태지평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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